음악, 이야기 없는 플롯의 구현 - 김우창

음악, 이야기 없는 플롯의 구현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음악은 한순간을 일체적인 경험으로 만든다. 음악의 순간에 우리는  잠깐 삶의 여러 일로부터 멈추어 선다. 그리고 그 순간을 전체적으로 느낀다. (적어도 배경 음악의 경우가 아닐 경우에 그렇다.) 이 전체성은 음악의 문법에 이미 들어 있다. 음악의 소리는 잡음이 없이 정련(精練)되어 있다. 강약과 고저와 음절 그리고 시작과 끝이 있다. 이것이 음악의 플롯을 이룬다. 그러나 플롯에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오페라와 같은 것은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음악에 구현하고 있는 것은 이야기 없는 플롯이다. 음악의 여러 요소들은 대체로 여러 가지 것을 시사하면서도 그것을 보여주지는 아니한다. 음악의 리듬은 무도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 리듬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곧장 우리몸의 움직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신체 안에서  뛰고 있는 신체의 리듬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심장의 박동(搏動)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것은 그것을 넘어 어쩌면 만물을 관통하고 있는 우주의 리듬을 배경에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율은 나의 마음이, 그리고 존재하는 것들이 시간 속에서 하나로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화음은 그것이 공간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한다.



더 간단하게는 음악이 환기하는 것은 사람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 또는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음악은 사물과 인간의 존재 방식의 근본에서 나온다. 그것은 일정한 공간적 지속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심오한 의미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지속을 느낀다고 하면, 그것은 대체로 슬프다거나 기쁜 감정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슬픔은 지속을 매개하는 감정이다.





음악, 앎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



그러나 음악이 사람이 사물과 관계를 가지고 세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을 드러낸다고 하여 우리가 그것을 분명하게 또는 심각하게 의식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잠재되어 있을 뿐이다. 이 잠재되어 있는 의식은 사람과 세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점막(粘膜)—멤브레인과 같다. 하늘을 올려보고, 산을 보고 들판을 내다볼 때 우리는 그러한 정지의 순간에 일체성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세계를 잠깐 감지한다. 음악의 점막이 씌워짐으로써 세계가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가벼운 해방감을 준다. 그러나 사물 자체, 세계 자체는 그러한 점막의 뒤 안에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 존재한다. 기이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암시가 행동은 물론 앎의 구속으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음악의 효과는 이러한 해방감에 관계된다.



젊은 시절, 전쟁과 구호와 군사훈련의 시대의 틈바귀에 음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저쪽에 있는 조화의 세계 그리고 그것을 넘어 말이 없는 세계를 열어주었다. 오늘의 시대는 그때처럼 구호와 명령의 시대는 아니다. 모든 것은 나의 또는 우리의 편의(便宜)에 봉사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정보가 되고 조종 대상이 된다.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은 나의 계략으로 조종되어 마땅하다.


심리적으로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나의 마음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론이다. 무슨 무슨 “이야기”라는 말들이 많이 쓰이는 것을 본다. 모든 것은 그럴싸한 이야기 속에 편입되고 편성될 수 있다. 음악도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음악 해설은 그러한 이야기의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쉬지 않고 들려주는 나의 삶의 이야기에 그러한 음악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을까? (모든 해설이 그러한 쉬운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이야기의 플롯 속에서 산다. 그러나 플롯의 저쪽에는 그것을 엮어내는 점막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사물 자체의 세계가 있다. 그것은 플롯을 초월하는—이야기 없는 플롯까지도 초월하는, 말이 없는 세계이다. 사람은 때로는 그것에 맞닿음으로써 그의 존재적 진실을 회복한다.



-김우창-  from 네이버열린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