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왜 쓰는가
글을 왜 쓰느냐고 하면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는게 정확한 답변일 것이다. 그냥 쓰는데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1924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실종된 영국 등반가 조지 말로리의 그 유명한 어록이 그래서 더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산이 있어 그곳에 간다(Because it's there)."
"달리기를 수행"로 여긴다는 소설가 김연수는 "사람들이 내게 왜 달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달리면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달리고 싶지 않으면 달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왜 글을 쓰는가는 물음을 받았어도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라고 했다.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않는다는 말>>)
소설가 천운영은 경향신문 '천운영의 명랑한 뒷맛'이란 칼럼에서 "이해하고 싶어서 쓴다. 무언가를, 나를, 누군가를, 관계를, 현상을, 세상을,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애를 쓴다. 애를 쓰고 쓰다보면 소설이 마무리된다."고 했는데, 여기서 소설 대신 '글'이란 말로 바꿔보자. 그렇다. 글쓰기는 아마도 세상으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강영숙은 "복수하고 싶어서, 실연해서, 존재감을 가지려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글이 떠올랐던 순간, 글이 쓰였던 순간의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절망해 맨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내 옆에 아무도 없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도서관협회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냥 살기 위해 씁니다. 우울함에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요"라고 말한다.
글은 왜 쓰는가에 대해서는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이 아주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글쓰기, 적어도 산문에 있어서는 네 가지 욕망이 있따고 했다. 인용해본다.
①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이다.
②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③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추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④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아마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여기 인용한 조지 오웰의 네 가지 욕망 중 하나, 두서넛, 아님 모두 다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글쓸기는 욕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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